2007. 11. 27. 22:10

인생의 청사진과 함께 꿈꾸기

최근에 인터뷰를 한 대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물었더니, 영화 홍보/마케팅을 생각하고 있다는 대답을 여러 번 들었다. 한두 번일 때는 그런가보다였는데, 그 이상이 되고나니 이게 새로운 트렌드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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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마케팅. 헐리우드 영화 일색이던 십 년전쯤과는 달리, 이제 한국영화도 각종 해외 영화제에 출품돼 상을 타기도 하고 흥행에도 성공하는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나와는 조금 다른 세대를 보낸 영상세대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래 친구들 중에도 해외로 영화공부를 하러 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서는 건 나 또한 철딱서니 없니 공중에 붕 뜬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감각 제로의 대학시절 나는 IMF를 맞기 전까지는 대학 들어가 공부 좀 하다가 해외연수든 유학이든 하고, 취직해서 외국에서 몇 년 살다 오던가, 아니면 국내에서 취직해 몇 년 보내다가 유학가면 안될까 하고 꿈꾸던 철부지였다.

그런데 그 철부지와 같은 대학생을 만나고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라도 간 것처럼 나는 안타까워하면서 공중의 붕 떠있는 그들의 발을 현실의 땅에 안착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왜 영화 홍보/마케팅이 하고 싶은가?, 영화 업계가 배고프다는 건 알고 있는가?, 실질적으로 월급이 남들보다 훨씬 적어서 생활비 이외에 목돈을 만들기 어려워도 괜찮은가?, 유학을 가겠다면 누구의 돈으로 갈 것인가? 적지 않은 돈을 부모님께 부탁드려도 될 만큼 가정형편이 넉넉한가?, 본인이 벌어서 가겠다면, 한달에 얼만큼씩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 어떤 방법을 통해 모아서 갈 것인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가?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질문을 했을텐데, 주된 답은 박봉이어도 상관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큰 꿈을 꾸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실감이 없는 꿈에 대한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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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작은 조립식 자동차도 조립을 위한 설계도가 있다. 순서에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단계를 밟아야만 제대로된 모양의 자동차를 손에 넣을 수가 있다. 하물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대로 살아버리고 있다. 삶은 소비하는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완성해 가는 것이다.

직장생활 후에 유학을 가고 거기서 새롭게 직장을 구할 꿈을 그리고 있다면, 국내에서 직장은 어떤 직장을 구할 것인지, 유학을 가기 위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어떤 학교에 지원할 것인지, 그 학교가 다음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새롭게 구할 직장을 위해서는 어떤 활동이 도움이 될 것인지, 이런 과정들이 최종의 을 이루는데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벌써 11월의 말을 향해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다음 달 말에는 올 한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내년도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보다 세밀한 내 인생의 청사진을 다듬는 시간을 가져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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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고 보니, 부푼 꿈을 안은 꽃다운 나이가 부러우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워지나 보다. 모두가 멋진 청사진을 안고 꿈을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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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een-knife.tistory.com BlogIcon 킨나이프 2007.12.01 17: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꿈이란 건 늘 고민만 남아요.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은 늘 고민하는 거겠지요...

  2. Favicon of https://withje.tistory.com BlogIcon vicky 2007.12.06 21:5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뜨끔합니다. ㅎㅎ

    그런데 과장님, 젤 아래 사진에 과장님이 계신건가요?
    i can't find you..

    • Favicon of http://juejenny.tistory.com/3 BlogIcon 至柔제니 2007.12.10 09:14 address edit & del

      ㅋ 난 거기 없어요. ^^;;

  3. Favicon of http://heart2heart.tistory.com/ BlogIcon 행복한 나눔 전도사 2008.01.10 09:42 address edit & del reply

    하지만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져~ 그 꿈을 계속 생각하는 사람은 안 이룰 수가 없거든~ ㅎㅎㅎ 하지만 꿈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그건 이루기 힘들겠지? 나 닉넴 바꿨어염~ 놀러와주삼~ ㅎㅎㅎ

    • Favicon of https://juejenny.tistory.com BlogIcon 至柔제니 2008.01.10 12:09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래. 꿈이 있으면 이뤄지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이 이뤄지기 전에 포기하거나 잊거나.. 다른 꿈으로 바꾸더라구... 당신의 꿈에 대한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 참.. 나 후원신청했어.

  4. Favicon of http://www.edhardysale.org.uk BlogIcon ed hardy uk 2011.01.11 19:08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의 꿈에 대한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2007. 6. 25. 12:54

[Movie Review]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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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지는 좀 됐는데, 쉽사리 글로 정리하게 되지 않아서 시간이 흘러버렸다. 한편 영화의 내용이 종교적인 내용이라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에 조금은 염려가 되었다. 어찌되었건 블로그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어 그런 염려를 살짝 접어두기로 했다.

내게 영화<밀양>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용서, 구원, 신과의 대립, 인정의 욕구 등이다.  

기사에서는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두고 '용서
'라는 화두에 직면한 학원강사 신애(전도연)와 그녀를 사랑하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의 이야기라는 소개가 나왔었는데,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이 영화의 원작은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벌레이야기>라는 글이었다고 한다. 그 글을 이창동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영화의 배경을 밀양으로 정했다고 들었다. 비밀 밀 자에 볕 양 자를 쓰는 밀양의 영문 풀이가 secret sunshine으로 나오기도 하거니와, 영화의 내용과 그 이름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비밀스러운 햇빛. 작가는 감독은 무슨 얘기를 우리에게 걸어오고 있는 걸까?

영화를 막 보고 났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려고 교도소로 찾아간 신애의 앞에는 범죄자라고 하기에는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이는 유괴범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녀의 얼굴에 불쾌한 것을 억누르는 빛이 스친다. 그녀는 유괴범에게 당신을 용서했고, 내가 알고 있는 신(하나님)을 전하고자 왔노라 말한다. 용서와 함께 신앙을 전하는 그녀는 마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신애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유괴범이 교도소에서 이미 그 신(하나님)을 만나 신으로부터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것이다. 교도소 안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했노라고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떻게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신이 먼저 용서했는지에 대해 분개한다. 그리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해 교도소를 나와서 쓰러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은 시작된다.

여기서 나는 이 영화가 용서를 도구로 인간의 뿌리깊은 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됐다. 모두가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교도소로 찾아갈 필요가 있었는가? 그녀는 어쩌면 용서보다는 인정의 욕구, 즉 내 신앙은 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사랑으로 감쌀 만큼 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에 있지는 않았을까? 신과 인간의 용서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가? 누가 누구의 스케줄에 맞춰 진행해야 하는가? 설령 신이 자신보다 더 먼저 용서했다고 해서 그토록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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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얼떨결에 살인을 한 강동원이 사형수로 교도소에 갇혀있을 때 죽은 사람의 어머니가 강동원을 용서해주겠다면서 교도소로 찾아온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음에도 그녀는 강동원에게로 달려가 그를 때리면서 목 놓아 울고 만다. 그러자 강동원은 울면서 잘못했다는 말을 계속 되뇌였었다. 잠시 뒤, 어머니는 강동원을 향해 용서를 한다고 와서는 이렇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용서가 결국은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의 하나라는 것을 나는 오랜 삶의 경험 끝에 깨달았다.

다시 내가 이해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은 불륜을 했고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어쩌면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자 지명처럼 그녀의 삶에 '비밀스러운 햇살'을 원했다. 그래서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정착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다. 무리에 동화되고 싶은 그녀와 이방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지역민들. 그녀는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해 땅을 산다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 허세가 미끼가 되어 그의 아들이 유괴되고 결국 죽고 만다.

그 맘때쯤, 교회에 다니는 한 사람이 교회에 한번 와보라고 권유하게 된다. 보이는 세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소개 받는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통 앞에 한없이 연약한 한 인간으로 선 그녀는 무기력하고 자신을 놓아버릴 듯 불안하다. 교회를 찾은 그녀는 신 앞에 고통을 내려놓고 싶어 갈구한다. 그리고 신앙을 매개로 지역 공동체에 합류하게 된다.

신앙에 있어 가장 낮은자/나중되었던 자가 신을 전하는 자가 되어 우쭐해지고 있었다. 겸손과 교만이라는 날선 검 위에 그녀는 곡예를 하듯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때 교도소에 찾아가 용서의 문제와 대면하고 패배하게 된다.

신과 대결하고 반항하는 무기력한 인간. 영화의 후반부로 달리면서 신에게 반항하며 부서져가는 자아를 표현하면서 영화는 결론을 맺지 않고 공허함을 남겨두고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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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적으로는이창동 감독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린 영화 속 예배들은 아우라가 빠져있었다. 껍데기/형식만이 남아있는 예배. 나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면서도, 영화 속에서 전도연이 과연 신앙을 제대로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겉모양만이 남아있는 예배 가운데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내 생각 때문이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밀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거다. 하느님께 분노하는 것조차도 인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자기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이 정말 아름답고 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있기 때문에, 누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살아야한다. 신에게 분노하는 것도 인간이니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자기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외도,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 외지에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스스로 답을 찾을 힘이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자살을 시도했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러기에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용납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그로 인해 목적의식을 갖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소설가 이청준은 원작의 제목에 왜 <벌레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것은 나이가 들거나 신앙의 힘을 빌어도 여전히 정제되거나 성숙되지 못하고 뿌리 깊은 죄성을 가진 벌레보다 못한 인간을 빗대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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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8. 18:00

[Movie]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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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가장 발칙하고 화려한 코미디 라는 메인카피의 마지막에 ! 태클을 날리고 싶다. "이게 코미디람? 어느 부분이 우꼈던 거지?"

 

암튼.. 영화 설명이 별로 필요없다. 나오기 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 1번이었고, 보고 나서는 '.. 나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화려한 의상, 멋진 뉴욕, 패션피플들이 가득한 거리 충분한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는 ' 보기는 ...' 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 심심한데, 볼게 없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문득, ~ 이유없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봤다.

 

처음에 볼때는 앤드리아의 입장이었던 같다. '.. 저런 마녀같은 상사가 있담.'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더라는 . 미란다에 대해 다시 보게 됐다. 그녀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직장생활에서 완벽주의자인 미란다. 가정생활이 삐걱 대자,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모습. 남편과 이혼해 눈이 벌겋게 되었는데도 저녁약속을 왜 취소하냐고 되묻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낯을 많이 가리느 베르사체의 좌석배치라고 말하는 그녀. 가슴 아프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더라는.
 

기억에 남는 장면, 대사와 단상

 

"어쩔 수가 없었어. /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by 앤드리아

à 말을 밖으로 내뱉은 것도, 속에서 삼킨 것도 수도 없이 많지 않을까?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었다고. 나조차도 어쩔 없는 것이었다고 변명해왔다. 그리고 그런 앤드리아와 나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서
미란다의 뒷통수 치기 전법에 놀란 앤드리아와 차를 타고 가면서 앤드리아가 나이젤에게 너무한 아니었느냐고 하자, 너도 나와 같지 않냐고. 앤드리아는 펄쩍 뛴다. 벌써 했잖아 에밀리한테... 아니, 분명 널위해 선택했어 그건 네가 이런 삶을 원했단 뜻이지 by 미란다 앤드리아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자, 미란다의 마디, 그것 역시 너의 선택이었어

à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다. 그것은 내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른 결정이었으며 선택이었다. 타인이 결정했다고 변명하고 싶을 . 얼마나 많은 결정을 이렇게 해왔는지하지만 이제 알게 됐다. 모든 것이 결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줄까? 내가 미란다가 나쁘다고, 너무 불쌍하다고 줄까? 힘들면 그만 .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구하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아. 너에게 이곳은 그저 거쳐가는 곳일 뿐인데,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미란다가 예뻐해주길 바래? 자긴 노력하는 아니야. 다만 징징댈 뿐이지 by 나이젤

à 그래. 솔직히 나도 뜨끔했다. 직장에 100% 만족하고 뼈를 묻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저 회사가, 상사가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했던 아니었을까? 사회라는 곳에 나와서 5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앤드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회의 기준에 맞도록 맞춰왔다. 그것은 틀에 맞춰 나를 잘라내는 것이었다기 보다는 정으로 조각을 하는 것처럼 다듬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
니가 지미추의 신발을 신는 순간에, 이미 영혼을 판거야" by 에밀리

à 영혼을 팔아버린 것은 무엇이었나? 연봉? 사회의 인정? 주위 사람들의 평가? 그게 무엇이었든 이상은 그렇게 넘어가지 않으리라.

 

주방보조나 하는 내가 누굴 욕하겠어. 다만 네가 하든 초심을 지키길 바랄 뿐이야. 처음엔 런웨이 여자들을 조롱하더니 너도 똑같이 변했잖아 by 네이트

à 적응하기 어렵던 사회에 적응한 지금, 초심은 뭐였을까? 양치기와 같은 리더에 목말라 하던 나는, 지금 어떤 양인가? 어떤 양치기가 되어 가고 있을까? 나는 달라지고 싶어하던 사람들과 똑같이 변하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달라졌나?

 

쪽이 잘되면 쪽은 탈이 나지 마리 토끼를 잡을 없는 거야 by 나이젤

à 그러게. 연애와 직장생활이라는 마리 토끼는 정말 잡을 없는 건가? 잡고서 결혼해서 낳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공감 200% 있는 멘트. 사실 연애할 , 일이 잘되기도 하는데..

 

언젠간 보상해 주겠지...아니...그렇게 믿고 싶어...믿어야 by 나이젤

à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이렇게 믿고 있을까? 아니, 그래왔다. 그래서 나이젤이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기뻐할 때에도 기뻤고, 본인의 꿈이 좌절되어 앤드리아가 괜찮냐고 물을 저렇게 대답했을 , 대답의 마지막에 믿어야 라는 멘트에 절절함이 묻어나 마음이 아팠다.

"만약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겠지요" by 앤드리아

à 워커홀릭의도시인 뉴욕과 서울. 물론 나에게 뉴욕은 다른 의미지만.. 서울은 그렇게 이름붙일 있을 같다. 에델만에서 보낸 지난 4년은, 스스로도 인정할 밖에 없는, 워커홀릭의 그것이었다. 내내 그랬다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남자와 여자들이 괴팍함에 대한 평가를 달리 받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이 땅의 일을 완벽하게 하는 남성들이 가정에서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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