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2. 12:10

순수의 전염

퇴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버스 앞쪽에서 세번째 자리쯤 복도쪽 좌석에 앉았습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 앞쪽에는 손녀와 할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손녀는 기껏해야 다섯살 정도 되어보였습니다. 할머니는 흰 머리 성성한 할머니가 아니라 검은 머리가 90%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할머니였습니다. 손녀와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들어와 앉을 때부터 아이는 나를 주시했습니다. 나도 그 꼬마를 주시했죠. 아이는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데다 너무 귀여운 표정으로 절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귀여운 애기에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이는 창가 쪽에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를 지나 나에게로 오고 싶어했습니다. '언니, 언니'를 연신 말하면서... 손을 잡아달라면서 손을 뻗었습니다. 나는 꼬마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말_'언니, 언니'을 들었는데도 내가 귀찮아할까봐 그런건지 자신의 컨트롤에서 벗어나면 힘들어질까봐 그랬는지 아이의 주위를 다른데로 돌리면서 그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꼬마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할머니와 까르륵 대면서 장난을 치는가 하면 또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에 반 정도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는 아이라면 우리 모두 조금은 짜증이 나서 집으로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을 텐데... 꼬마의 청명하고 맑고 투명한 웃음 소리와 노래 소리는 우리 모두를 아이로 만들만큼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떳다 떳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 하늘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얼마만에 들어보는 동요였을까요? 갑자기 내 입술은 꼬물거리는 꼬마의 입술을 좇아서 동요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작게.. 나도 들릴락 말락하는 작은 소리였지만 가슴 속에선 크게 크게 울렸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스에서 내리고 난 다음에도 난 어둠 속에 조용히 흥얼거렸습니다. 꼬마의 투명함이 전염이 되었나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꼬마의 맑고 투명함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 맑고 맑은 옹달샘 /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written by Jenny at August 30, 2002

'A Thought Pie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re and Now  (4) 2007.11.07
완벽이라는 말이 가져다 주는 환상  (2) 2007.10.15
순수의 전염  (6) 2007.10.02
당신은 준비된 인재입니까?  (4) 2007.09.21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2) 2007.09.11
진실 (Truth)  (0) 2007.09.09
Trackback 1 Comment 6
  1. Favicon of http://read-lead.com BlogIcon Read&Lead 2007.10.04 22:30 address edit & del reply

    이런 전염은 온 세상에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순수가 전염되고 열정이 전염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데... ^^

    • Favicon of http://juejenny.tistory.com/3 BlogIcon 至柔제니 2007.10.05 09:12 address edit & del

      네, buckshot님. 저도 그런 좋은 세상에 살고 싶어요.
      날씨가 모처럼 쾌청하네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 Favicon of https://withje.tistory.com BlogIcon vicky 2007.10.09 13: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과장님께서도 순수를 전염시키고 계신다는거 알고 계신지 :)
    요즘 아이들이 제가 자랄때와 같은 동요를 흥얼거린다는 사실이 생각 이상으로 반가워요!
    광합성으로 에너지 충전한 기분좋은 오후입니다~

    • Favicon of http://juejenny.tistory.com/3 BlogIcon 至柔제니 2007.10.10 08:46 address edit & del

      ^^;; 저도 어젠 즐거운 오후였어요. 적절한 햇살이 우울증을 예방해준대요.

  3. Favicon of http://www.hohkim.com BlogIcon 김호 2007.10.11 18:49 address edit & del reply

    아... 그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네요. 블로그를 통해서도 순수의 전염이 되는 것 같아요. 버스에서 경험하신 그런 순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작으면서도 파워풀한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 Favicon of https://juejenny.tistory.com BlogIcon 至柔제니 2007.10.11 21:15 신고 address edit & del

      작으면서도 파워풀한 행복.. 이런 순간 덕분에 미소짓고 세상이 한뼘쯤 더 아름다워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순수함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